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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란 종교는,

분명히 그 처음이 있고, 그 끝이 예언된,

처음과 끝이 분명한 종교다.

이런 기독교란 종교는, 따라서 막연한 종교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란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란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그에게 의지해, 그의 죽음에 동참할 뿐 아니라 그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코자 하는 종교다.

 

빌3: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래서 냉정하게, 굳이 기술적으로 표현하면,

기독교란 종교는 종교라고 부르면 안된다.

기독교는 창조자에게 다가가고, 그를 만나고, 그와 동행하는 여정이다.

실체와 정신과, 사상이 한결같은 내 삶 자체란 말이다.

 

 

그 처음과 끝이 분명한 종교.

 

나는 앞 서 “[바이블코드] 성경을 이렇게 읽어라“를 통해서 모든 성경의 기준이 창세기, 사복음서 그리고 사도행전이 되어야 한다고 증거했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는 처음과 끝이 분명한 종교다.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을 뛰어넘어,

나의 창조자와 동행하는, 창조와 나 사의 “관계“와 “관계성립“이다.

원뿌리인 창조자 곧 너희의 진짜 아버지를 만나 그와 동행하는 발걸음이 “기독교“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기독교란 이 세상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기록된바,

 

창3: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만일 우리가 본질적으로 흙이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면 끝이라면,

만일 창조자가 우리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아서 우리가 생령이 되지 않았다면(창2: 7),

만일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이 세상에 종속된 약속이었다면,

그러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창조자는 우리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우리가 생령이 되게 하였고,

또한 아브라함과의 언약(약속)을 신실하게 이루며, 스스로 부활의 첫열매가 되었다.

이로인해 그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이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약속)은,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영인 성령을 주고, 성령의 능력에 힘없어,

그 이름을 믿는 믿음 하나로 창조자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복음“이라 말한다.

 

 

그래서 다른 모든 이유를 배제하고서라도,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은 그 창세기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기위해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온 증거의 말씀은 사복음서, 그리고 약속한 성령을 보내준 증거인 사도행전이, 모든 성경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그러면? 창세기를 어떻게 증거하테냐?

만일 네가, 종말론을 비하할 거라면, 창세기도 증거할 수 없다.

처음을 증거하지 못하는 네가, 그 끝을 증거할 수 없으며, 그 끝을 증거하지 못하는 네가, 처음을 증거한다는 건 거짓이다.

 

 

초대교회는 어땠을까.

 

초대교회 뿐 아니라, 성경이 증거한 그의 백성 곧 그의 성도들이 한결같이 다시오실 예수를 바라보며 살다 죽었다…

성경의 허다한 증거들이 다시오실 예수를 증거했으며, 다시오실 예수를 바라봤다…

이게 팩트(Fact)다.

 

어떤 이는 이러한 초대교회에 관한 성경의 증거에 관하여,

여러 변명을 늘어놓을 지라도, 분명한 건, 다시 올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 자체가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엔, 내 영과 육 사이의 부딛김을 감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으로는 예수에게 매달려 있을 지라도, 내 육과 내 육의 눈동자엔 어쩔수없이 세상의 형적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육신을 벗어 던지는 그날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예수와 교제하게 되지 않겠나.

그래서 성경이 바울을 통해 고백하기를,

 

고전13: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처음과 끝을 증거할 수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처음과 끝을 증거할 수 없으면, 그는 목사가 아니라. 그는 삯꾼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시 올 예수 그리스도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하고 싶었던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그들의 자식들에겐 어떤 가르침을 줬겠나.

베드로가 바울이, 자기 육신을 벗어던질 날이 다가오던 그때에, 그들이 복음을 변질시켜 다시 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말라 증거하더냐.

 

그들이 적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았나.

그들이 피비린내 나는 “영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마지막때의 비밀을 증거했음이라.

 

엡6: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에베소서 전체를 다시 읽어보라.

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영의 전쟁이라...

 

 

+ 종말론을 비하하는 목사들에 관하여 "전체 글" 읽어보기.

 

종말론을 비하하는 목사들에 관하여 – 43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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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