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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그리고 음모론










앞 선 “링컨과 케네디의 암살은 세상에 무엇을 남겼나” 글을 통해서,
프리메이슨을 알려면 “성전기사단()”이란 조직을 꼭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오늘은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프리메이슨리(Freemasonry)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프리메이슨이란 단체의 이름이다.
그리고 프리메이슨(Freemason)은 프리메이슨리라고 불리우는 이 조직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뜻한다.
다시말해서 조직에 속한 각각의 조직원을 프리메이슨이라고 부른다.
 
12세기 중세 십자군 원정 당시…
 
1118년 프랑스에선 9명의 기사들(위그드파앵이 주도)이 모여 성전기사단을 발촉하고 성지인 예루살렘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이스라엘로 떠난다. 그리고 이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2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언덕에 기사단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 터가 그 옛날 솔로몬 왕의 성전(Temple)이 있었던 자리였기 때문에 기사단의 이름이 성전기사단, 또는 성당기사단이 된 것이다.
 
당시 유럽 사회는,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라는 종교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종교전쟁을 치루고있던 때였기에, 따라서 솔로몬 성전터는 성경에 기반하여 매우 중요하고 성스러운 땅이었다.
성전기사단이 이 솔로몬 성전터에 기반을 잡을수 있었음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역사에서 소개된 성전기사단의 마지막 또한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1307년, 프랑스 필립보 4세는 성전기사단이 바포멧(염소머리)을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한 죄, 십자가에 침을 뱉는 행위나 음란하고 이단적인 입회식을 한 죄 등을 물어 당시 성전기사단 단장이었던 자크드 몰레를 화형에 처한다. 그리고 많은 성전기사단이 이와같은 죄목으로 고문과 화형에 처해졌다. 급기야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비엔 공의회에서 성전기사단의 폐쇄를 결정한다. 성전기사단의 공식적인 마지막 모습이다.
 
역사가 기록한 성전기사단은, 특이할만한 사항이 몇가지 있는데,
 
 
- 먼저 이들이 고딕건축양식을 유럽 사회에서 최초로 만들어낸 장본인들 이었다는 사실이다.
- 또한 기부금과 헌금등을 통해 금융업의 형태를 갖춘 실제로 금융업을 하였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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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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