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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작성을 시작하며 다음 두 가지를 꼭 기억하면 좋겠다.

하나는 누가 뭐래도,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창조자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라는 것이다.

창조자와 아담이 1대 1의 관계였듯, 창조자와 아브라함이 1대 1의 관계였듯,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1대 1의 관계다.

창조자와 우리 또는 무리(그룹)라는 1대 2의 관계는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성경은, 주인공은 예수고, 예수의 인류를 향한 구원사역의 역사서다. 이게 성경이다.

이런 성경은, 실질적인 역사서며, 문자 그대로 일어났고 이루어진 살아있는 인류의 역사다.

처음과 끝이 있으므로, 처음이 있었듯 그 끝이 있는 종교가 기독교다. 기독교는 막연하지 않다.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가,

창조자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라면,

그러면 예수의 타임테이블을 두 개의 맥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예수의 구원사역의 처음과 끝이라는 인류역사를 비취는 타임테이블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적 구원사역을 위한, 1대 1의 관계 속에서의 타임테이블이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의 탄생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

왜냐하면 약속을 맺은 대상이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에 성령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1대 1의 관계 속에서의 타임테이블에 초점을 맞춰 작성하려고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타임테이블.

 

갈3: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에 관한 성경의 증거가 많지만,

그 중 갈라디아서를 통해 증거한 복음이야말로 믿음의 조상이 어떤 의미인지 본질적으로 접근하게 해 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본래 복음이란? “약속(約束)“이다.

이 “약속(約束)“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와 맺은 언약인데, 창조자가 직접 이 땅에 오겠다는 약속이었다. 창조자가 직접 이 땅에 떨어져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어 첫열매가 되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로 인하여 창조자의 영인 성령을 주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할 수 없는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우리는 복음이라 말한다.

 

구원이란 동행(同行)이다.

모세를 통해 증거한 바, 너희는 오로지 너희 주의 얼굴만 구해라 하였다.

모세를 통해 이 증거를 가르친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증거한 복음은, 너희는 그저 내게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한가지 진리였다. 매달려 있어야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매달려서 예수가 어디로 가든 동행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구원“이라 말한다.

 

요15: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성령을 주겠다 한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에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매달려서 동행하는 것이니까.

그가 어디로 가든, 그에게 매달려 동행하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든,

은혜를 주든 안주든, 은사를 주든 안주든,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데려가든, 천국으로 데려가든,

그런것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매달려서 영원히 동행하는 것이다.

 

 

 

 

히브리 기자를 통해서 증거한 바,

믿음이란 본질적으로 신뢰(信賴)라고 하였다.

 신뢰(信賴)는 주권자가 창조자라는, 창조자가 모든걸 주관한다는, 절대적인 의지(依支)다.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는 바,

믿음을 논하는 자는 복음을 믿는 자며,

복음을 믿는 자는 성령을 의지하는 자며,

성령을 의지한다 함은, 곧 예수에게 매달려 있으려 하는 자다.

복음 믿음 구원은 땔래야 땔 수 없는 하나의 고리다.

 

 

+ 예수의 타임테이블 – 구원 "전체 글" 읽어보기.

 

예수의 타임테이블 – 구원 – 43Gear

이 글의 작성을 시작하며 다음 두 가지를 꼭 기억하면 좋겠다. 하나는 누가 뭐래도,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창조자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라는 것이다. 창조자와 아담이 1대 1의 관계였듯, 창조자와 아브라함이 1대 1의 관계였듯,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1대 1의 관계다. 창조자와 우리 또는 무리(그룹)라는 1대 2의 관계는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성경은, 주인공은 예수고, 예수의 인류를 향한 구원사역의 역사서다. 이게 성경이다. 이런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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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