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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어를 방문하는 기어들중 어떤 기어들은 보수-우파일테고,

또 43기어를 방문하는 어떤 기어들은 진보-좌파일수도 있겠지.

보수-우파는 진보-좌파를, 그리고 진보-좌파는 보수-우파를,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며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어제는 진보-좌파를 판단했던 네가, 오늘은 교회를 나가서 판단하지 말자! 스스로를 기만했던 경험이 없니.

오늘은 공평치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거짓과 위선이 팽배한 사회를 보며 그 사회를 조성하는 사단의 회를 판단한 우리가,

갑자기 "예수" 라는 단어가 들어오면, 판단하지 말자! 도리어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너를, 정죄한다.

어떻게 이럴수 있다는 거냐.

 

어제도 오늘도 가령 내일도 판단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 판단에 예수란 이름이 끼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거냐.

아니면, 진보, 좌파 혹은 친북, 친중을 비판하는 그 비판은 정죄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냐.

기준이 뭔냐...

 

때로는 성경을 읽으며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오는 때가 있음을, 나도 잘, 알고있다.

같은 성경, 동일한 성령이 증거한 그 성경을 읽으며, 판단을 해야하는지, 죄가 되지는 않는지,

그러므로 그 어떤것도 판단을 해서는 안되는지, 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판단을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때가,

종종 다가옴을, 나도 잘 알고있다.

 

 

일전에 "우리는 김수환이란 인물을 알아야 한다"는 제목의 토픽(글)을 작성하며,

내가 핀란드에서 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었던 따루라는 여성에 관한 내 생각을 증거했던 적이 있다.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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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사사로이 핀란드에서 한국으로 와 살고있는,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었던 "따루"라는 여성을 언급해 보려고 한다.

이 여성의 입에서 한국의 문제점에 관한 말들이 나올때면, 어김없이 이민자, 혹은 외국에서 온 거주자들의 인권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늘 그 인권의 중심은 자신의 모국 '핀란드와의 비교'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핀란드의 인권이 그렇게 만인에게 평등하고 좋다면, 그래서 핀란드가 더없이 살기좋은 천국이라면,

"따루"란 저 여성은 왜 한국에 와 살고있을까?

 

결론적으로, 난 이 여자를 대단히 악하게 본다.

유튜브, 구글, 할 수 있는 검색방법을 동원하여 핀라드의 현실을 살펴봐라.

핀란드의 젊은이들이란 모든 젊은이들이 핀란드를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하며 산다.

 

이유는 이렇다.

"따루"란 저 여자의 말대로, 그 복지, 그 인권이란 이름하에, 이민자들에게 수없이 돌아가는 그 혜택 때문에,

정작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핀란드인에겐 아무런 인권도, 복지도 적용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허리가 휘도록 땀흘리고 일해서 세금을 내는건 핀란드의 젊은이들이고,

그들이 낸 세금을 써 재끼는건 난민이란 이들이다.

이게 핀란드의 현실이고, 이게 팩트(Fact)다.

 

내가 "따루"란 저 여자를 대단히 악하게 보는건,

그게 싫어서 그게 슬퍼서 한국으로 또는 타양으로 떠나왔다면,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이 있는 자라면, 자신이 정착한 이 나라 대한민국엔 그런 거짓된 인권과 복지로 자국민이 눈물흘리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팩트(Fact)를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 구역질나는 인권과 복지를 말하는 핀란드의 정치꾼들 때문에 타향으로 떠나와서는,

이제 한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나는 조국 핀란드에서 받았던 그 차별을 이제 한국에서 채워야 겠다는 것! 이 아니냐.

 

웃으며 이야기 한다고 그가 선한자가 아니며,

선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고 그가 정말 선한자가 아니다.

따루란 저 여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똥과 된장도 구분하지 못하는 인생들아.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유익을 갈구하지, 진실을 갈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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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육신을 위로하려하고,

사람의 육신을 만족시키려하는 그 행위가, 옳으냐.

그 행위가,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보지만, 정작 자기 육신의 만족과 육신의 위로받고 싶어함인줄 모르냐.

그 육신, 육의 만족과 위로 받고 싶어함이, 사단에게서 왔단다...

 

사람의 육신이 간직한 근본적인 악...

예수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판단받을까봐, 나 자신을 향한 안위다...

 

그래서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나에게만 화살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심.

오직 나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면서 예수를 핑계삼는 자기기만이 아니냐.

 

계3: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정말 두려워 해야할건,

너의 중심이 어디로 향해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중심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판단도 너를 위한 판딘인지 예수를 위한 판단인지.

판단하지 않음도 너를 위한 판단하지 않음인지 예수를 위한 판단하지 않음인지.

정죄하지 않음도 사람의 영광과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정죄하지 않음인지,

아니면 예수의 마음이 아파하는걸 알기에그의 마음 때문에 정죄하지 않음인지...

정작, 이 중심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성경이 명백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증거했다.

 

롬2: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걸 그리스도가 기뻐하지 않으리라. 성경이 틀릴수 없으므로.

이 성경의 말씀은 인생들의 모든 삶, 모든 그와의 동행에 기준이 되고 적용이 되는 정신이지만,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게 있다. 사복음서도 위 로마서도,

이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네가 판단을 받으리라 한 그 판단은,

분명한 대상이 존재하며 분명한 대상을 향한 경고였다는 사실이다.

 

  • 첫째는, 그리스도를 판단하는 유대인을 향한 경고였으며,
  • 둘째는, 율법을 행하면서도 같은 율법을 행하는 유대인의 유대인을 판단하는 그 판단을 향한 경고다.

 

이 글을 읽을 기어 너는, 어떻게 할거냐.

만일 너의 자녀의 팔을, 사단이 꽉 붙잡고 끓고가려 한다면, 너는 그 사단을 판단할 수 없으므로 묵묵히 너의 자녀를 사단에게 내어 줄거냐.

만일 너의 귀한 지체가 사단의 음성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너는 판단할 수 없으므로, 사단에게 영혼을 빼았기든 말든 모른채 할테냐.

 

 

고린도후서 11장의 증거.

 

고린도후서 11장은 통째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성경이다.

 

고후11: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

뱀은 그 특유의 거짓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며 미혹케 했다.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한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

뱀은, 이와같이 미혹케 했다는 것다.

 

고후11: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이 뱀과 동일하게,

사단은 언제나 광명의 천사로 둔갑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다가오고 예수의 이름으로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 예수의 이름으로 다가와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미혹시키는 그들이,

유대인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고후11: 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그리곤 연이은 갈라디아서의 포문을 열며,

이 예수란 이름으로 지체인척 다가와 영혼을 지옥으로 끓고 내려가는,

예수란 이름을 팔아 율법을 전하고,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는 그들을 저주한다.

 

갈1: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그러므로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성경이, 선과 악을 판단치 못하게 하였다면 성경이 증거한 모든 강론, 모든 증거는 헛것이라.

만일 성경이, 사단을 사단이라 판단치 못하게 하였다면 뱀을 뱀이라 판단치 못하게 하였다면 교회는 그 누구를 향해서도 판단할 수 없으며, 이단들을 향해 이단이라 정죄했서는 안된다.

만일 성경이, 사단의 회를 사단의 회라 증거하지 못하게 가둬두었다면, 우리는 이리로 혹 저리로 물이 흘러가듯 떠돌이들의 삶으로 성령이 내 몰았으리라.

만일 성경이, 영을 분별하지 못하게 가둬두었다면, 우리는 이미, 사단과 엽합하는 것을, 허락받았음이라!

 

그러나 성경이, 그 사단과 사단의 회와 사단에게 영혼을 빼았긴 이들과 뱀과 독사의 자식으로 등장하는 그들을 분별토록 하였기에, 그러므로 성경이 분별과 영을 판단함과 사단의 영을 가늠할 수 있는 권세를 주었음을 확신하노라.

 

마7: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악은 용납하는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악을 용납한다는건, 그 악과, 이미 연합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왜? 신천지를 경계하고,

예수는 왜? 사단의 회를 증거했다는 거냐.

우리는 왜? 선택이라는 것을 하며, 우리는 왜? 예수를 선택했다는 거냐.

내면의 나침판을 따라서, 영혼의 울림을 무시하지 않은채, 우리의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존재한다고, 그가 주권자임을, 인정해 드린것이 아닌가.

이건, 판단이 아닌것 같으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면 그가 선한자냐.

사람의 육신을 위로하는 네가, 선한자냐.

사단의 회 곧 제수이트 바티칸의 사제들은,

죽어가는 자를 위로하며 그 영혼을 더욱 지옥으로 끓고 가는도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로하고, 육신의 만족을 쫓는 이 육신이 악하다.

 

요6: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앞선 글 "진짜와 가짜 -드러나지 않는 열매"를 통해서,

내가 존 파이퍼 목사에 관한 내 생각, 내 의견, 내 판단을 증거했다.

 

악을 용납하는 자, 곧 그 악과 연합한 자라.

뱀을 천사로 둔갑시킨 자? 사랑으로? 그리스로라는 그 이름을 팔아서?

그런 복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줄 아냐.

사람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줄 알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았지만, 사람의 영광을 사랑했던 그 바리새인들이 증거가,

그들에게만 종속된 증거가 아니다.

 

그의 열매로, 그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의 열매로만, 판단해야 한다...

 

 

 

 

+ 열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열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43Gear

43기어를 방문하는 기어들중 어떤 기어들은 보수-우파일테고, 또 43기어를 방문하는 어떤 기어들은 진보-좌파일수도 있겠지. 보수-우파는 진보-좌파를, 그리고 진보-좌파는 보수-우파를, 서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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