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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전부다 풀어헤치고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되는거야...

 

롬1: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이해하는것과 인정하는건 다른거라고.

예를들면, 교회의 나가 예배를 드리며, 어떤 설교자의 설교에 고개를 끄덕이는건 이해한게 아니다.

그건 그저, 당신의 말이 맞는것 같다고 인정할 뿐이다.

이해는, 행위가 수반이 되어야 돼.

그게 이해다.

 

나도 인정은 한다.

예를들면, 오늘은 감격스러웠던 그 이름 예수가,

자고 일어나면 그가 정말 존재하는지, 그가 정말 날 지켜보고 있는지,

성경은 진짜인지, 신천지가 진짜는 아닌지,

흔들리는 그 영혼들의 흔들림을, 나도 인정은 한다.

왜냐하면 그럴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영혼들 중에서 자신의 중심이 잘못되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영혼은 없고,

아무리 골백번 예수를 증거해도, 돌아서면 자기 아집, 자기 고집으로 가득한 자기 속사람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가령 이런거다.

창세로부터 그의 구원사역은 관계(關係)에서 출발했다. 머리로의 이해가 아니다.

머리로 뭔가를 계산하려는 그 행위는, 사단의 개입 이후다.

그러면? 최소한? 모든 자아를 내려놓고 관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A라는 국가와 B라는 국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 A라는 국가는 기독교 국가다. 이들은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토론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게 신의 뜻인지에 관해 토론한다.
  • 반면 B라는 국가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B 국가의 국민들의 토론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서 토론이 출발된다.

 

이는 아주 분명하게 갈리는 두 국가간 다른점이다.

그리고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면 A라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로 고민한다면 뭔가 자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란 특정 자아를 대할때마다 흔들린다.

예수의 존재가 흔들린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란 그 자아에 관해 마음이 흔들린다는 말이다.

 

예를들면 내가 누군가에게 예수의 존재에 관해 질문하는데서 출발하는게 아니다라고 증거했다면,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인후 돌아서는 순간 질문에서 다시 출발한다.

사단이 하와를 속여 넘어뜨렸던 그 원죄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곤,

그리곤 돌아서는 순간 그 사단의 속삭임을 스스로 원한다.

이런 인생들을 아주 쉽게 발견한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건만,

끊임없이 마음속으론 자신의 의, 자신의 영광, 자아를 스스로 원하기 때문이다.

사단이 자신의 자아 때문에 쓰러져 떨어졌고,

하와가 사단과 같은 죄악을 범하려다 에덴에서 쫓겨났는데,

그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관계란 본질적으로 그런게 아니다...

 

 

한번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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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 비전 – His Vision – 43Gear

한번 생각해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전부다 풀어헤치고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되는거야... 롬1: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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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