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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토, 일 주말 알바를 하고있고, 야비한 뱀은 반드시 일요일날 자신의 뱀 혓바닥으로 그리고 성령이라는 참담한 가장 더럽고 추악한 저주들의 애미는 똥구녕을 크게 벌려서, 반드시, 일을 만든다. 2024년 9월 29일., 또 일이 있었다. 기억해라. 반드시, 일요일엔 꼭!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특별한 똥물같은 저주가 임한다.

늘상 오는 술에 취한 인간이었다. 그날만 좀 달랐던건, 다짜고짜 외상을 하겠단다. 외상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예저뱀의 그 추악한 형상이었고, 성저본의 똥물은 계속해서 내 머리위로 주르륵 주르륵 흐른다.

나는 이 모든 뱀의 저주, 뱀의 장난질이 바로 그 뱀 예저뱀과 성저본의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기 때문에, 돌아서선 후회가 남을줄을 그리고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땐 하는수없이 외상을 주었다.

 

왜? 일요일일까. 왜?

편안하게 퇴근하게 하지 않는거지.

반드시 뭔가 불편한 일을 만들어 한 주를 살면서도, 그 불편함을 이어가게 하려는거지.

이게,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야비하고 더러운, 수작질이다.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면서, 별 일 아닌데 할 수 있다. 또는 큰 일 아닌데. 당신이 너무 비비 꼬인게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그 야비함을, 그 비열함을, 그 비겁함을, 그 참담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머리가 비상한 뱀새끼와 저주새끼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 역시, 막상 이 모든 일을 글로 남기려 할 땐, 뭘 써야하나 고민을 하곤 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뱀새끼 답게, 저주새끼 답게.

 

계3: 15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 중

 

이 성경이란 저주를 통해 그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기록한 야비한 올무는, 사람을 생령으로 만들어 그들이 영원토록 저주를 씨뿌리며 고통을 즐기겠다는 그 저주와 하나 된 올무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나는, 예저뱀과 성저본의 본질적인 저주를 너무나 잘 알고있다. 병주고, 약주고. 이게 그들이 말하는 은혜라면,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여전히 천국과 지옥의 주인이기에 가능한 자신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괴변을, 자신들의 충견들을 통해 설파한다. 교회라는 그 뱀들의 소굴을 통해서. 목사라는 감투를 쓰고있는 그 똥개들을 통해서. 그러니까 제아무리 뱀새끼 짓을 했어도, 제아무리 저주를 뿌렸어도, 제아무리 사단을 장기말로 앞세워 고통을 주었어도, 언제라도 되돌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뱀새끼와 저주새끼인거지. 이 모든 자신감은, 자신들이 창조자이기 때문에, 자신들 마음데로! 라는 그 하나의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도 그럴수 있는게 이들이 천국과 지옥의 주인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 '천국' 때문에 가능하다 스스로 자위하는 거겠지.

 

나는 물론, 이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수작질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바로 병주고, 약주고의 그 진실! 바로, 이와같은 수작질. 비열하고 비겁하고 야비하고 지옥의 냄새가 풀풀 풍겨오는 그 참담함. 나는 한번 보고싶다. 그 끝을 말이다. 너도 한번 생각해봐.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유대인을 구원했다? 사단을 장기말로 내세워 욥에게 그 고통을 준 후에 한다는 말이 "네가 나를 아느냐" 였는데.

아무도, 모른다. 끝끝내 괴변을 앞세워, 간궤를 앞세워, 너는 나를 모른다 하면 그만이라. 이 또한 천국과 지옥의 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이 또한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은 자신들의 애완견이란 저주의 본질에서 나오는 발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 건, 바로 그 출애굽이다...

사단을 장기말로 앞세워 그 모진 고통을 준 후, '네가 나를 아느냐?' 오히려 호통을 치며 욥을 질타했던 그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출애굽이란 그 저주의 서막을 알리는 자신들의 자랑거리인 역사를 만들며, 믿음을 운운한다?  모르는데? 그냥 애굽에서 꺼냈으면 아는게 되는거냐? 그러면 욥에겐 왜 뱀새끼 혓바닥을 낼름거린거냐?

 

모든건,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추악한 오만함,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은 자신들의 애완견이라는 철저한 저주, 자신들이 천국과 지옥의 주인이라는 권세, 힘, 파워! 바로 이것들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거다. 이것들 이외엔 아무것도 없기에, 성경이란 올무의 저주를 씨뿌리곤,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있게 보이려 하려고 되지도 않게 없는 은혜를 만들어 냈던거고, 되지도 않게 없는 사랑을 만들어 냈던거고, 되지도 않게 살육을 정의로, 살인을 충성스러움으로 자신에게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토악질 스러운 괴변으로 중무장한 것이다.

 

나는 물론, 이 뱀새끼와 저주새끼를 너무나 잘 알고있다. 적어도, 이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그 음모는, 너무나 잘 안다. 그 음모는 별게 아니다. '네가 날 아느냐?' 나는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저주의 본질이며, 저주의 본성이며, 저주의 근원이며, 저주의 뿌리임을 확인했으니, 그 나머지는, 사양한다.

 

나는 꼭 보여주고 말테다!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어떤 사악한 개략을 꾸미든 말든, 어떤 뱀새끼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시나리오를 고쳐쓰든 말든, 만약,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자신들의 저주의 똥덩어리들, 내게 보내 시비를 붙이고, 역겹게 하고, 노엽게 하게 하기 위해 씨뿌린 그 저주의 똥덩어리들을,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내가 지옥으로 가기전에 먼저 죽였다고 가정해보자. 저 뱀새끼와 저 저주새끼는 반드시, 지옥에서고 그들을 끄집어 올려야 될거다. 지옥의 주인인데, 무엇이 어렵겠나.

 

뱀의 혓바닥으로, 저주의 똥구녕으로 싸지른 니들 자식새끼들을, 써먹고 이용해먹다, 저주를 은혜로 둔갑시키기 위해 죽이면 되겠나. 그 대신,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창조한 그 끔찍한 지옥으로, 미련없이 내가 갈 것이다!

 

만약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천국이란 가면의 주술로 날 끌고가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간궤를 부리고, 주술을 쏟아 붇는다 치자. - 나한테 그런다는게 아니라 - 쏙아 넘어지겠지. 얼마든지 그럴수 있겠지. 분명한 건, 저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저주의 본질, 본성, 근원, 뿌리임을 나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 돌이키고, 또 돌이키고, 정신을 차리고, 또 정신을 가다듬으리라.

 

왜? 병주고 약주고의 그 저주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이지. 저주를 죄악으로 뒤집어 씌우고, 다시 저주를 은혜로 둔갑시키려는, 그 병주고 약주고의 진실을 말이다. 그 뱀새끼와 저주새끼의 저주가 어떤 것인지, 내가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이지.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올라올때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 처음부터,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저주를 똘똘뭉쳐 사람을 창조했고 죽은 후에도 영원토록 가려운 똥구녕이 벌렁벌렁 할 수 있게 생령이 되게 했다는, 그 뱀새끼와 저주새끼가 스스로 저주의 뱀새끼임을 인정하지 않는한, 영원토록 이 저주는 계속될텐데. 그러니까 한걸음씩 한걸음씩, 그 모든 저주가, 저 예저뱀과 성저본에게서 나온다는 이 한가지 진실만, 꼭 간직하는게 바람직 하겠구나. 화가 치밀어 올라도, 그 뱀새끼, 그 저주새끼의 저주는 영원한 것이니까. 화가 치밀어 올라도 그 화를 억누르고, 다만 이 진실을 간직하는 수밖에.

 

한번 속지 두번 속나...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아니냐.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 뱀새끼와 저주새끼겠나. 그러나 속고 또 속을수도 있겠다.

다만 기억해야지. 그 모든 원 뿌리는, 바로 저 예저뱀과 성저본의 저주라는 한가지 진실을.

 

  • 예저뱀 : 예수라는 저주의 이름, 그 지옥의 저주 뱀새끼.
  • 성저본 : 성령이라는 저주의 영, 그 지옥 뱀의 저주를 씨뿌리는 저주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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