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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교훈

 

 

 

 

 

앞 선 “그들의 이름은 왜 조선일까“에서도 밝힌바,

여러 의견, 이견, 견해가 있을 지라도, 나는, 언어야 말로, 감추어진 역사를 파헤치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창8: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아라랏산에 대한 신학자들의 일반적 주석

 

 

  • 바벨론 북방 알메니아국의 앗시스산 (해발 5,185m). 홍수때 노아의 방주가 정박하였던 산이다(창8:4).
  • 앗수르왕 산헤립을 죽인 두 아들이 이 지방으로 도망하였다(왕하 19:37, 사 37:38).
  • 이산을 바사인은 구이누(노아의 산)이라 하고 터키인은 아그리다(험한 산)라 하는데 그 중복에 그는 본래 알굴 이라는 동네가 있다가 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어 매몰되었고, 전설에 노아가 그 동리에서 폰를 재배하였다 하여 그 아래 잔짓여완 이라고 하는 곳에 노아의 분묘가 있다 한다. 
  • 아라랏’은 아르메니아 지방에 있는 나라 이름인데, 앗수르식 이름은 ‘우라르투 (Urartu)’이다.
  • 아라랏산은 흑해(Black Sea)의 남동쪽, 하란의 북쪽 그리고 오늘날 터키의 동쪽 경계에 있는 산맥으로 우라르투 지역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 이 산의 정상은 해발 약 5,200m 의 대아라랏과 해발 4,000m 의 소아라랏으로 구분되는데, 여기서 부터 흐르는 시냇물은 티그리스와 유브라데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 

 

 

분명한 건, 노아의 방주가 정착했던 그곳, 그땅에서 인류의 역사는 다시 시작하였고,

노아의 방주가 정착했던 그곳, 그땅에서 인류는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떤 역사를 망논하고,

그 역사가 표현하기를,

알에서 나왔다는둥, 상자안에 들어 있었다는둥, 등등으로 기록된 역사의 실체는,

그 알, 그 상자안에 들어있던 그 사람이 외지(外地), 즉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 단군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전제 "전체 글" 읽어보기.

 

단군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전제. – 43Gear

 

43gear.com

 

 

 

-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