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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9월 27일.,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란 제목의 토픽(글)을 작성했고,

오늘은 이어지는 두번째 토픽(글)으로, 그 행함의 본질이 무엇인지 마침표를 찍을까 한다...

만약 아직, 앞 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를 읽고 묵상해보지 않은 기어들이 있다면,

먼저 앞 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를 읽고 묵상해보길 추천한다.

 

 

행함의 본질.

 

계2: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성, 경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주제가 있고,

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 하나다.

 

이런 성경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정신과 사상이 있으니,

그와의., 연합이다...

 

여전히...

누군가 내게 "기독교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관계"다. 그와, 나와의 관계... 이게 기독교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동행"이다. 그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삶도 죽음도 초월해, 온전히 그와 영원토록 동행하는 것.,

이를 우리는 구원이라 말한다...

 

 

앞 선 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에서...

 

나는 어느 대형교회 목사의 간증을 예로 제시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그 대형교회 헌금위원이, 정말 믿음이 있었다면? 정말 예수가 모든걸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면?

정말 주권자의 주권하에 있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면?

그가 과연., 헌금에 손을 대고 헌금을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는데 이용할 수 있었을까.

 

약2: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위 야고보서 성경구절을 굳이 NIV 까지 소개한 이유?

한글성경이 이해하는데 힘겨워서?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쉼없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James2: 17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여전히 직역하면, 마찬가지로 믿음이 행동을 동반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이다.

 

문제는,

위 NIV 성경도, 개역한글 성경으로 번역된 우리가 보는 성경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을수 있는건,

행함이 믿음보다 먼 저 올 수 없다는 한가지 진실이다.

믿음이 먼저고, 그 믿음때문에 행위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란, 믿음의 열매가 맞다.

 

그런데.,

행함, 행위가 있어야 한다 듣다보면...

어느새 행위와 믿음의 순서가 뒤바뀌고 말지...

그러므로 행위를 강조하는 목사라는 인생들도, 어느새 그 마음에서, 믿음이란 단어는 이미 지워졌으리라...

이게 문제라...

 

문제는,

굳세지 못하고, 문제를 위한 문제를 만들며, 자기 의, 자기 영광을 구걸하는 자들이,

애써 행위가 먼저인지 믿음이 먼저인지? 또는., 행위를 자기들 스스로가 재단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행위? 누가 사람의 마음을 그 중심을 재단할 수 있다는 거냐.

그의 중심, 그의 영혼의 나침판은 예수만 알아! 예수만 그의 중심을 측량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기어들중,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자냐 묻는다면, 행위가 먼저라고 대답할 기어들은 없을 것이다.

행위구원을 강론하는 삯꾼들도 동일하다. 입으로는, 믿음이 먼저라고 대답할 것이다. 예외없이!

입으로는 그런데, 정작 그들의 행위와 열매는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다.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입으로는 그런데, 정작 그 삯꾼들이 자기 성도들에게 요구하는건 행위다.

왜냐하면 그 행위속엔, 그 삯꾼들을 향한 공경심도 배려심도 울어어봄도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냐.

 

 

중심.

 

마음을 감찰하고 그 마음의 중심을 살피는 예수가, 너의 중심을 모르랴.

마음이 연약해 몸이 연약해, 오늘 손 잡아주어야 했던 한 영혼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치자.

돌아서선,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 아파하는 그 마음을., 예수가 만져주리라...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경고한 그 예수가,.

너의 연약함과 너의 무익함과, 너의 나약함과 자기 육신의 처지를 생각하는 너의 무지함 때문에,

절대로 널 버리지 않아...

 

이런말을 여러번 하지 않았나.

부자면 다 악하냐. 가난하면 다 선하디.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본질적으로 그런게 아니다.

그러면 행위를 강조하는 너희가,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분별하지 못하냐.

너희도, 너희의 영혼은,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분별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일까보냐...

 

야고보서가 증거한 행위 역시, 본질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행위가 아니다.

성령은 야고보서 2장의 마지막을, 다시금 아브라함을 거론하며 끝맺음 했다.

 

약2: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행위가 뭐라는 거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주권자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로,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엥 받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행위의 조상이 아니다.

창조자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행위라는 열매로 나타났을 뿐이다.

 

이 행위 또는 행함이란 단어가 없어도,

그가 다 자켜보고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면,

그자 주권자라는 믿음이 정말 있다면 어떻게 헌금을 훔치랴.

 

위 야고보서의 증거를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니, 기록된 바라.

 

히11: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결국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위 성경구절의 진짜 의미는,

믿는척, 믿음이 있는척, 흉내를 내 본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저 흉내를 내고 믿는 척 해 봤으나, 실상은 믿음 자체가 없는 자라는 뜻이다.

 

믿는, 척이 아니라, 정말 그가, 모든걸 감찰하고 있는 하나님인줄 않다면,

정말 그의 주권하에, 주권자의 주권하에 있는 세상임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면,

그를 신경쓰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영혼의 울림이며, 이게, 그와의 동행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그가 버스정류장에 먼저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야 한다 증거한 이유?

그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성? 그와의 교제?

그와의 관계 성립은, 창조자가 살아계심을, 그의 주권하에 있음을 인정해 드릴때 시작된다.

창조자의 존재도, 그의 주권하에 있는 세상임도 인정해 드리지 못하면서 무슨 행위?

그를 구원자로 높여 드리는 중심도 가다듬지 못하는데., 어떤 다른 행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인가.

이 사람아...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는데, 무슨 행위?

행위가 필요하다면 마음과 뜻과 영혼의 중심을 그에게로 향하게 하는 행위부터 하는게 옳다.

 

 

이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 그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거였고,

이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 그는, 이 땅에 육신의 모습으로 왔던거고,

이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 그는, 아버지의 뜻대로 죽어준 것이다.

 

이미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육신이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거되지 않았나.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걸, 그의 영인 성령이, 우리안에서 할 수 있게 해 준 이 은혜가,

그래서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라고 증거한게 아닌가...

 

이후에는,

행위 또는 행함이란 단어가 걸림이 되거든 아예 잊어라...

그 대신,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지켜보며, 네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주길 기다리는...

그의 얼굴을 구해라...

 

행위란?

그를 신뢰하는 절대적인 신뢰 하나면,

다 이룰수 있음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니라,

그의 영인 성령이 내 골수 끝까지 파고들어와,

내가 하기 싫어도, 내가 하기 힘겨워해도,

우리가 할 수 없는걸 다 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행함의 본질.

 

행함의 본질. – 43Gear

지난 2020년 9월 27일.,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란 제목의 토픽(글)을 작성했고, 오늘은 이어지는 두번째 토픽(글)으로, 그 행함의 본질이 무엇인지 마침표를 찍을까 한다... 만약 아직,

43gear.com

 

 

-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