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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국방부 장관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상화 공군참모차장, 서욱 장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이덕훈 기자>

 

  •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의 지휘 라인 책임자는 6명이다.
  • 대대장·단장(각 2명),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이들은 여군 이모 중사가 지난 3월 2일 성추행을 당한 뒤 5월 21일 극단 선택을 하기까지 어떠한 실효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책임자는 2명 더 있다.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은 3월 5일 이 중사 성추행 사실을 알았음에도 국방부 훈령·지침을 어기고 4월 6일에야 국방부에 보고했다. 국선변호를 맡았던 공군 법무관은 3월 9일 선임 이후 한 번도 이 중사를 면담하지 않았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8명 중 단 1명만이라도 맡은 책임을 다했더라면 이 중사는 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 중사 죽음에 진심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관련자가 많아 책임감이 분산된 탓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현상을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1964년 미국 뉴욕의 자기 집 근처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30분 이상 사투를 벌이면서 주변 40가구에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고(추후 일부 정정) 당시 미 언론은 보도했다. ‘내가 안 해도 남이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중사도 성추행 피해를 80일 동안 22차례 알렸지만 방관 속에서 죽어갔다.

 

  • 공군엔 양성평등센터뿐 아니라 ‘인권나래센터’라는 기구도 있지만 무용지물이었고,
  • 성추행 사건을 ‘즉각 보고’하라는 국방부 훈령·지침도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 이 중사 죽음은 제도 안에 정위치했어야 할 책임자들이 자기 임무를 방기한 탓.

 

  • 양성평등센터장은 “지침을 미숙지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라고 했고,
  • 공군총장 대행은 “센터가 보고 절차를 못 지켰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 국선변호 법무관은 딸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하하하웃었다.
  • 최종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은 보고 지연에 대해 “저도 이해가 안 된다”며 남 일처럼 얘기.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때 전사자 6명은 끝까지 자기 위치를 지켰다.

조천형·황도현 중사는 숨을 거두고도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전우들을 치료하다가 총탄 100발 이상을 맞았다.

반면 세월호 참사 때 선장은 승객을 선실에 방치한 채 속옷 바람으로 먼저 배를 탈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경영진은 수시간 전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도 영업을 강행했다.

 

이번 참극에서 군 책임자들의 태도는 연평해전이 아니라 세월호·삼풍 때와 닮았다.

이 중사의 죽음을 부른 무능하고 무책임한 방관자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공군 여중사 죽음의 방관자들 '6인'...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건 – 43Gear

공군 여중사 죽음의 방관자들 '6인'... <서욱 국방부 장관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를 추모하며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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