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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5: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그날...

예수가 내게,

"교회를 통해 너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가르침이 끝이 났으니, 이제 너는 이 교회를 떠나라"...

 

떠날수 없었다...

나 역시, 내 몸된 교회를 사모하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내 육신의 굴레와 유전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내 영이, 몸담았던 그 교회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마는,

어렴풋이 느끼는 영의 느낌이었고(참고로 당시엔 영이 느끼는 느낌인지, 육이 느끼는 느낌인지도, 분별할 수 없었음),

예수는 절대로, 말을 듣지 않고, 떠나라 한 그 교회를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내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 교회가 어떻게 변질되었고, 섬기던 교회, 그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이 매일 밤마다 무슨짓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 교회를 떠난후, 환상으로 그의 음성으로 알려주었어. 그 환상과 그의 음성으로 알게된 그 교회에서의 행위들이,

내 귀에 들려오기 까지도,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 2008년 12월의 마지막 주일, 그 주일의 예배를 끝으로, 난 지금까지 교회라는곳을, 가본적이 없다.

물론 예수와 싸운후, 내가 예수를 버린후엔, 갈 필요가 없게 되었지.

 

---

 

추신_

 

여전히...

나에게, 왜 예수님과 싸웠는지요? 하는 질문이 이따금씩 오긴 하고,

그리고 어젯밤 늦은 시간에 "교회를 나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통의 메일을 받은후,

이 토픽(글)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나는 여전히, 그를 생각하거나, 그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육신으론, 육신의 입으론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에 사로잡히는게 사실이다.

다만 이 증거는 한번쯤은 해 두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예수가, 스스로 원한거고, 예수가, 스스로 한 말이라. 그가 그의 입으로,

 

"너가 나에게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욕설을 하게 될거고, 너가 나를 향해 매일을 하루같이 침을 뱉어 낼 것이며, 너가 나를 저주하는 날이 올거야. 내가 너를 분노케 할 것이며, 내가 너로 인하여 나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게 할 거란다. 그 날이 다가왔단다. 너는 정녕히 알라"

 

저 말을 내게 했을땐, 싸움이 막 시작되던 찰나였고,

저 말을 내게 했을땐, 그가 내게 깊고 깊은 상처를 안긴 직후였다.

지 입으로, 자신이 이렇게 되게, 만들거라 했으니, 이 모든 과정을 위해 또 여기까지 온 거라고 했으니,

돌이켜보건대 자기 뜻대로 된 게 아닌가.

피차 후회가 없으면 그만이다.

 

한편으론 그래서,

열불이 나고, 화가나는 내 자신을 거울에 비춰볼때마다, 쓴웃음이 나오기도 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이리가도 저리가도, 예수 손바닥 위에 있는 한낯 피조물인것을...

 

---

 

다시 볼론으로 돌아가보자. 그때부터 였던것 같아.

태생이 모태신앙인 이었기에, 사는 내내, 예수 앞에서 교회에서 울기도 참 많이 울어봤고,

늘 홀로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집회에, 수련회에, 어떤 어떤 간증회나 부흥회도 늘 참여했었던 나였고,

내가 서울을 떠나 천안으로 그리고 다시 이곳 이천으로 오기까지, 모든 삶을 예수가 주관하고 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그때부터 였던것 같아...

 

그 교회를 떠난후로, 그때부터 였던것 같아.

이전과는 달리, 숨쉬는것 하나까지도 참견하기 시작했으니까...

태생이 모태신앙인 이었기에, 사는 내내, 예수 앞에서 교회에서 울기도 참 많이 울어봤던 나는, 회개를 안해봤을까.

그가 나의 골수 끝까지 들어와선, 내가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 골수 끝까지 차고 넘치게 있던 그 모든 죄악을,

그가 하나씩 하나씩 다, 꺼내더라고...

 

그때부터 였던것 같아.

화장실에 단 하루도 마음편이 가본적이 없었으니까. 부끄러워서...

화장실엘 앉아있어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있는 예수를, 느낄수밖에 없게 되어서...

 

자위행위? 육신의 만족? 꿈도 꾸지마라. 자위행위...

나는 사는 내내, 자위행위를 몇번이나 해봤을까.

어느날 육신이 연약한 나는, 자위행위를 한번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쓱 돌려 그의 눈치를 살필수 밖에 없었어...

자위행위를 하려는, 그런 내 모습을 내 등뒤에 앉아서 보고있는 예수를, 내가 못본척 할 수, 없었으니까...

 

내 육신이 자위행위를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내 육신이 죄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며,

화와 성냄과 부족한 억제력과 인내력을 애써 숨기려 해서도 아니고,

오직, 그런 내 육신의 무익함을, 예수가 보고있기에...

그런 그를 위해, 돌이키는 거야... 그의 원함 때문에...

이게 전부야...

 

예수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한다는건, 이런거야...

너의 육신의 원함? 그런거 꿈도 꾸지 말아라...

잘 안될거다...

 

 

예배자의 삶.

 

그러면 모든게 헛되냐.

그 교회를 떠나 날이면 날마다 예수가 내안에, 내가 예수안에,

단 둘이 마주앉아 내가 내 주를 향해 그를 노래하고, 그를 예배했던 그 순간들이, 헛되냐. 그렇지 않단다.

기록된 바,

 

고전3: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던 그날에,

그 순종했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창조자 자신의 영 곧 약속한 그의 영(성령)을 주어,

이제 각사람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을 모르냐.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 두세사람이 모인 그 곳이 바로, 성전이다.

 

만일 성령이 오사, 성령으로 인하여,

이제 율법아래 매여있을땐 도무지 살 수 없었던 삶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를 알고, 그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하는 삶으로,

매일 매일,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그 은혜가 은혜가 아니라고 할거라면,

그러면 우리는 다시 율법 아래 매여 성전이란 이름의 건축물 안에 가둬짐이 맞다. 하지만,

그러면, 약속하여 준 그의 영 곧 성령을 준 은혜는 헛것이며, 성령을 준 그 은혜가 헛것이면,

곧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의 죽으심도 헛것이라.

 

갈2: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만일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여김을 받을수 있었다면 그래서 구원에 이를수 있었다면, 성령이 온 것은 헛것이며,

성령을 주겠다 약속한 그 약속과 그 은혜의 의미는, 사람이 사람으로 율법 또는 그 어떤 유전으로도 의롭다 여김을 받을수 있는 육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요4: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만일 이 육신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었더라면, 성령을 보내준 은혜는 헛것이며,

다만 이 육신이 율법의 어떠한 행위로도 의롭다 여길수 없었기에, 그의 영인 성령을 주어, 우리의 행위가 아닌 우리의 중심이,

온전히 그에게로 향할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고후6: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면 무슨 말을 할까.

너희가 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게 아니냐.

너희가 만약 그리스도인을 자처한다면 그의 죽으심에 합하여 그의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려 함이 아니었냐.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인 너희 자신이 우상으로 채워지지 않게 하려함이 아니었냐.

성경이 증거 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3: 27) 하였음이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너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임을 기억하는게,

중요해...

 

 

그러면 교회가 헛되냐.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내가, 교회는 헛되며, 교회라는 건축물은 한낯 건축물에 불과하다 증거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너의 몸 곧 하나님의 성전인 너 자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바 된 주의 성전도, 모두 귀하며,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다만 성경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인생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 바,

 

롬7: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너의 몸인 그의 성전도, 하나님을 위해 건출물로써 세워진 주의 성전도 귀하지만,

그의 성전인 너의 몸과 건출물로써 세워진 주의 성전을 대하는 너의 중심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성령께서 오신 그 이유가, 너의 중심 때문이었기, 때문이야.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어디에 있든, 혹 학교에, 회사에, 병원에, 길거리에, 버스정류장에, 그곳이 어디이든,

네가 예수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며, 그에게 매달려, 오늘 하루도, 예배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없는지,

이 문제, 이 중심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너, 너로, 예배 받으려고 스스로 창조자가 되었으며,

자기 백성을 살리려고, 그의 영인 성령을 주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한사람의 예배자가 서있는곳, 그 한사람의 예배자가 예수에게 매달려 머물러 있는 그곳,

그 한사람의 예배자가 또다른 한사람의 예배자와 연합한 그 장소,

그곳이, 너의 주의, 몸 된 성전인줄, 알아야 한다.

 

 

본질적인 의문.

 

그의 질서.

 

고전12: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교회 안에는 분명히, 그리고 반드시 그의 질서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그 교회를 건축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그의 질서대로 건축된다.

누군가에게는 주의 성전 건축을 향한 비전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벽돌을 쌓아올릴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성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꿀수 있는 은사를...

 

어쩌면... 어쩌면 그랬을수도 있지...

만약 몸 담았던 그 교회를 떠나라 했던 그 시절에,

만약 그 몸 담았던 교회를 내가 건축한 교회였더라면,

만약 그 몸 담았던 교회의 목회자가 나였더라면, 그러면 나에게 떠나라가 아닌, 사단을 내어 쫓으라 했었겠지.

그러나 당신의 질서대로 세운 당신의 성전에서, 비록 그 성전이 나에게도, 내 주의, 내 몸 된 교회였을지라도,

나에게 나가라 했고, 그의 손으로 그 교회를 쳤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본질적인 질문.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자.

우한폐렴(코로나19)에 관해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그 대신 내가 하고싶은 본질적인 질문은 이런것이다.

 

  • 이 순간에도 중국과 북한의 많은 교회들이,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지하로, 동굴로, 숨어들어가서 예배 드리는 그들의 교회는, 교회가 아니냐.
  • 이 순간에도 중국과 북한 뿐 아니라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지하로, 동굴로 숨어 들어가 예배 드리는 그들의 교회를 통해서는,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을수 없는 거냐.
  • 그러면 지하로, 동굴로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그들의 예배를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른다해서, 예수가 그들의 예배는 모른채 할까.
  •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영광은 누구에게 돌리려는 것이며, 예배는 누구를 위한 예배냐.
  •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교회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며, 누구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

 

앞 서 소개했던 울 진주모님 글 "한국 교회는 호구? 또 문재인 정부의 갈라치기?"를 소개하며,

나는, 진주모님의 글이 하고자 하는 주장을,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나는, 진주모님의 글이 전하려는 그 메시지에는, 100% 동의한다. 했던 이유가, 위 다섯개의 질문에 담겨있다.

아마도 어젯밤 늦게, 메일을 보낸 그분도 소개한 진주모님의 글 "한국 교회는 호구? 또 문재인 정부의 갈라치기?"을 읽고,

보낸 메일이었겠지만...

 

이 글을 읽을 기어 너에게 "교회, 예배"가 어떤 의미냐.

이 글을 읽을 기어 너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를, 누구에게 보이고 싶은 교회를 말하는 거냐. 다시 말하지만,

만약, 성령께서 오시지 않아서 내 몸이 곧 주의 성전이 될 수 없었다면,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가짜라.

만약, 성령께서 오시지 않아서 내 몸이 곧 주의 성전이 될 수 없었다면, 본질적으로 성령이 오신후에,

절대로, 초대교회를 열방으로 흩어지게 하시지, 않았다.

만약, 성령께서 오시지 않아서 내 몸이 곧 주의 성전이 될 수 없었다면,

그러면 지하에서, 동굴에서, 예배 드리는 그 예배는 헛것이고, 왜냐하면,

의롭다 여김을 행위로 받아야 함으로, 목숨을 걸고 의롭다 여김 받을만한 웅장한 성전을 건축해야만 했을 테니까.

 

때때로 우리는, 육신의 열망과 믿음을 혼동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들은적이 있었다.

한 선교사가 중앙아시아로 선교를 떠났는데, 이 사람이 돌아와서 간증 집회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간증집회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선교, 사역을 위한 헌금을 모아, 다시 중앙아시아로 떠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후, 이 선교사는 빈털털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는 간증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음도, 전도도, 선교도, 내가 하지 않는다.

나를 역사하는, 오직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그의 사역이다.

 

처음부터 그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하러 갔던 그 중앙아시아 국가가 "이슬람국가"를 선포하는 바람에,

더는 선교활동을 할 수 없어서 귀국 했던 것이고, 그 선교사는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낸 그 사역지에서 세운 교회를,

이슬람에게 빼았기고 싶지 않았기에, 교회에서 간증 집회를 하며 더 많은 헌금 모금활동을 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열매는? 결국 더 많은 성도들의 헌신도,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낸 교회도 모두, 이슬람에 빼았기고 말았다.

그러면 도대체, 그 선교는, 그 성도들의 헌신은, 누구를 위한 헌신이었을까.

이슬람을 위한 제사였고, 이슬람을 위한 헌신이 된 것이다.

이게, 열매다.

 

이 세상에, 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읽는 기어 너가,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한다면 말이다.

교회를 세울수 있게 허락하는것도, 그 교회를 문닫게 하는거도, 예수가 하는 그의 사역이다.

그 교회를 세우는 순간, 그 교회가 내것이 되어버리면, 그때부턴, 분별을 할 수 없게 돼.

 

설사 예수가 그 선교사를 그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보냈을 지라도,

만약 그렇다면, 그 예수가 이제 너는 돌아가라 하는 그의 음성에도 동일하게, 똑같이,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되면, 결국 내 의고, 내 자랑이며, 내 영광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는 지금,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고 있다.

 

너는 네가 서있는 그곳, 그 자리에서, 너의 등뒤에 예수가 서있는거냐.

너는 지금, 예수에게 매달려 그가 서있는 그곳, 그의 앞에서 서선, 그의 눈동자로 세상을 보고 있는거냐.

 

미안하지만 교회라는 이름으로, 대충 대충 다같이 엮어서 말하지 말자.

그 교회들중에 이미, 바티칸과 연합한 교회가 허다하고, 바티칸을 섬기는 교회가 허다하며,

사단에게 산 제사를 드리고, 사단이 세운 바벨의 삼위일체와 호루스의 눈을, 성전의 기둥으로 못박은 교회도, 존재한다.

그 교회들 대부분이 이미, 종교통합(WCC) 이라는 계획에 동참하고 있지만, 마치 독사의 자식과 같이,

앞에서는 사랑을 노래하며 성도들을 지옥으로 끌고가고 돌아서선 사단에게 절하는 교회가 있을 뿐이다.

도대체, 어떤 교회가 깨어나야 한다는 거냐.

도대체, 어떤 교회를 말하는 거냐.

 

만일 예수가, 우리가 알지못하는 자기 종 한사람을 들어 그를 왕으로 세운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왕은, 예수가 자기에게 준 그 나라를, 예수의 몸 된 성전으로 만들지 않겠나.

피를 보수하는 자가 있으며, 자신의 질서로 창조한 세상이기에, 그 왕은, 자신에게 맞긴 자기 주인의 성전에서,

악을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의 성전을 더럽힘을, 용납하지 않겠지.

만약에라도 이런 날이 온다면, 이는 아예 근본적으로 다른 경우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 왕의 백성들도, 그 왕과 합하여 그들의 주의 성전을 지켜야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리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한가지는,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여, 예수의 싸움에 동참하는 거란다.

그에게 매달려, 그가 잠잠해라 하면 잠잠하면 돼. 

그에게 매달려, 그가 어디론가 데려가면, 그대로 매달려 동행하면 된다.

그가 너를 어디론가 데려 가려는데, 너의 눈동자가 그를 떠나 성전이란 건축물로 향하고, 그래서 그에게서 떨어진다면,

이 또한 우상인줄 알아라. 왜냐하면 그가 중심에 없는, 그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라도 너의 중심이 채워지면,

그게 바로, 우상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 된 교회는 그의 것이지만,

너의 중심은 얼마든지, 그의 몸 된 그 성전을 우상의 제단으로 만들수 있단다.

 

그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겠다고 하면 누가 막으리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 사단의 역사도 강하게 역사하듯,

또한 사단이 움직이는 곳으로 성령의 불길도 함께 움직인단다.

 

육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교회가 다 문을 닫게 될 것처럼 보이고,

육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교회가 다 허물어질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

기독교는 처음이 있고 끝이 있는 종교잖아. 기독교는 막연하지 않아.

본질적으로 여는것도 닫는것도, 세우고 허무는 모든 주권이, 주권자에게 속해있는 일이다.

 

혹 예수가, 이 시기를 통해, 그 알곡들을 더 단단하게 담금질한다 할 자리도, 무슨 말 할거냐.

혹 예수가, 이 시기를 통해, 사단과 연합한 교회들을 허물고 들춘다 할 지라도 무슨 말 할건데.

그러면 그의 백성들도 꺼질것 같냐. 그렇지 않단다.

그가 알곡이라면, 그렇게 되지, 않는단다.

 

우리는 실패해도, 창조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

너를 믿지말고, 그를 믿어라!

 

인생들아...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들중에, 무익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나...

그러면 안된다고! 육의 정욕에 치우치면 안된다고! 설사 오늘밤 다짐을 해도, 내일 아침,

악의 악한 행위들을 보는 순간, 그 정욕이 다시 살아나고, 그 정욕이 다시 열정으로 돌변해 나타나곤 해.

 

나도 아는바,

나의 몸 된 교회인데... 내 몸 된 성전인데...

그날, 이제 이 성전을 떠나라 했던 그 순간에, 나도 발걸음이 때어지지 않았었는데.

 

하지만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메고,

너의 바램으로 말고, 너의 열정으로도 말고,

세상을 향한 너의 분노로도 말고, 세상을 향해, 하고싶은 너의 자랑으로도 말고,

너는 다만, 그에게 매달려 있으렴...

너는 다만, 그만, 의지해...

너 말고, 그를 믿어라...

 

 

+ 교회와 예배에 관한 관점, 분별.

 

교회와 예배에 관한 관점, 분별. – 43Gear

막15: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그날... 예수가 내게, "교회를 통해 너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가르침이 끝이 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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