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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카페 꿈.
재운의 방엔 바닥에 이부자리와 전기장판이 켜져있고 그 앞엔 좌식 책상과 노트북이 켜져있다. 재운은 일이 없는 날이나 집에 있을수 있는 날이면 언제나 두꺼운 이불로 어깨를 감싸고 전기장판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곤한다.
“어머니: 재운아 오늘은 집에 있을거지?”
“재운: 어. 오늘은 나가도 일이 없어…”
“어머니: 그래 이렇게 추운날은 집에 있어라. 엄만 재단간다. 새벽에 일찍올께.”
“재운: 잠깐만…”
재운이 일어서선 어머니를 배웅하려고 방에서 나간다.
“재운: 이렇게 추운날엔 엄마도 집에 있지?”
“어머니: 가야지…”
재운의
어머니는 이처럼 매일밤 재단엘 가시고 새벽에 돌아오신다. 수야가 재운에게 이제 이 재단을 떠나라 한 후 부터 사실 어머니는 재운
때문에 많이 속상해 하셨고 재운을 많이 걱정하고 계신다. 재운이 왜 재단을 떠났는지 알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재단엘 가시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재운이 다시 돌아오길, 언젠간 돌아오겠지 늘 기다리시니 말이다. 어머니가 나가시고 재운이
방으로 들어오며 방문을 닫고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조금 연다. 창문을 조금만 열었을 뿐인데도 몸이 움츠려들고 떨릴만큼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재운은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창문 만큼이나 기다란 책상에 앉아 창밖의
어두움을 보며 담배를 피운다. 재운을 따라 방으로 쫓아 들어온 둘라는 따뜻한 전기장판위에 앉아서 재운을 빤히 보고있다. 사실
오늘은 재운이 지나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재운은 꼭 한달에 한번씩 지나가 일하는 카페를 간다.
2년전. 두전동.
이곳은 전안의 유명한 먹자골목이다. 세상의 모든 식당, 모든 술집을 옮겨다 놓은듯 밤이되면 네온사인이 요린하다. 아파트 단지가
있는가하면 바로 길 건너엔 룸살롱들이 즐비하게 이어져있고, 초등학교가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정문앞 상가는 온 통 노래방관
단란주점들의 네온사인으로 요란하다. 이곳 전안에서 대리기사들에게도 인기가 가장 많은 장소지만 재운은 오늘 성태와 함께 화려한
네온사인을 헤치며 먹자골목을 걷고있다.
“성태: 아니 그래서? 너 오늘 형 생일인데 술한잔 산다는거야 못 산다는거야?”
“재운: 살려고 왔잖아요. 근데 룸을 꼭 가야하는건지 모르겠다는 거지. 내 말은…”
“성태: 내가 오늘 그 집엘 꼭 가고 싶어서 그래.”
“재운: 아니, 무슨 일당 10만원 짜리가 룸을 가?”
재운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성태는 이런 재운을 돌아본다. 성태는 지금 재운들 데려가는 룸 카페란 곳엘 몇번 다녀온 눈치고,
오늘도 조금은 흥분되어 있는 눈치다. 재운을 이끌고 가는 그의 발걸음이 평소완 달리 매우 다급해 보인다.
“성태: 와… 니가 일당 10만원짜리야? 밤엔 대리운전고 하고 서경에 사진도 찍으러 가는데? 와 애 점점 짜지네…”
“재운: 형수라도 알면 진짜…”
“성태: 형수 이야긴 꺼내지도 마. 죽지못해 살아 내가… 내가…”
“재운: 미치겠다 진짜…”
성태는
재운보다 일곱살 많은 선배다. 성태는 미대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잘 안되서 현재는 목수일을 하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재운과 성태는 할 이야기도 하고싶은 대화도 참 많은, 예술과 영화에서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수
있는 죽이 참 잘 맞는 사이다. 사업에 실패한 뒤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성태에게 재운은, 후배이자 동료고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고
서경을 떠나 전운에 온 뒤 우연한 기회에 성태를 소개받은 재운에게도 성태는 유일한 동료이자 친구고 선배였다. 시간이 생기면
수시로 성태와 차 한잔 하려고 달려갔었고 재운이 지금보다 더 힘겨웠던때,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늘 재운의 술친구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준게 성태다.
카페 꿈. 재운과 성태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 꿈은 8개의 작은 룸이 있는데 각각의 룸엔 한 사람의 손님과 한 명의 아가씨가 출입을 한다. 그리고 제공되는 술과 안주를 딱 두시간 동안 마시고 나와야 한다.
“매니저: 준비 됐습니다. 계산은 어느분이…?”
“재운: 네. 제가…”
재운이 일어서며 준비된 값을 지불한다.
“매니저: 이 쪽으로 오시죠.”
매니저가 성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성태가 연장자이고, 이곳이 처음이 아니어서 낯이 익었으리라. 성태가 매니저를 따라 룸으로 가려하자 재운도 덩달아 성태를 따라나서는데,
“성태: 아니. 자넨 좀 기다려.”
성태가 재운을 만류하며 소파에서 기다리라는 사인을 준다. 재운은 다시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카페안을 살펴보는데 채 몇분도 되지 않아 매니저가 이번엔 재운을 룸으로 안내한다.
룸의
문이 닫히고 재운도 살짝 초조한 눈치다. 어떤 아가씨가, 어떤 여성이 들어올까. 룸 안 분위기는 길다랗고 안락한 소파가 있고
소파 앞에 작은 탁자가, 그리고 그 탁자 옆엔 또 작은 소파가 있는게 전부다. 룸 안 불빛은 온통 붉은색으로 채워져있고 다소
어둡다. 잠시후, 똑똑똑… 한 여성이 룸으로 들어온다. 내색은 절대 할 수가 없었다. 룸안으로 들어오는 여성을, 재운은 순간 할 수
있는한 따뜻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지한다. 하지만 뭔가 감동적이다. 감격적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재운: 이름이 뭐야?”
“지나: 지나… 오빠는?”
“재운: 재운…”
이
여자… 지나… 재운은 지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붉은색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도 지나를 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수야가
재운에게 벌써 수차례 이 아이가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아이라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지나를 오늘, 이곳 카페 꿈에서 만난
것이다. 재운은 아무런 말도 하질 못한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멍하니… 지나를 만났다는게 믿겨지지 않기만
하다. 이렇게… 널 만나는구나… 잠시동안 생각에 잠긴다…
“지나: 기분이 안좋아?”
“재운: 아니… 내가 왜?”
이런
재운을 보며 지나가 수줍게 웃어보인다. 재운과 지나는, 이렇게 서로를 처음 만났다. 재운과 지나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진
않았다. 재운 스스로 무슨말을 해야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지나를 만났다는 사실 많으로 재운은 미래를 성큼 꿈꾸다가
카페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태의 와이셔츠에 얇게 묻어있는 립스틱 자국 많으로도 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이 카페를 왜
찾는지 알 수 있었지만, 재운에겐 아무런 문제도 상관도 없었다. 지난 세월을 되돌릴수도 갚아줄수도 없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그보다는 재운의 머릿속엔 지나의 눈빛이 말해주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무게와 상처가 더욱 짙은 여운으로 자리잡았었다.
재운이
차 안에 앉아 과거를 떠올리듯, 지나를 그리워하듯 생각에 잠겨있다. 아직 지나를 예약한 시간이 한시간도 더 남았는데 재운은 이미
집을 나와 카페 꿈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만끽하면서 담배를 피운다. 재운에겐 이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늘
특별하다. 재운은 카페 꿈을 갈때면 늘 지나를 예약하고 간다. 예약 시간은 새벽 1시. 지나가 3시에 일을 마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혹시, 집에라도 바래다 줄 수 있을지 몰라서… 혹시라도 오늘은 예쁜 찾잔에 따뜻한 커피를 가득담아 함께 마실수
있을지도 몰라서… 재운은 늘 새벽 1시에 지나를 만나러 카페를 찾는다.
한 달에 꼭 한 번… 지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왜 기다려지지 않고, 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까. 지나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그 설레임을 다잡지 못해 빨리 밤이 되기많을
기다리는 재운이다. 하지만 겨울의 찬바람을 맞고있는 재운의 눈빛은 마냥 설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그
두시간이 지나고 나면, 돌아서야 하는 새벽의 그 쓸쓸함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이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고 어쩔땐 화가 나다가 서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가 다시금 설레이는 마음으로 지나를 만나러 올때면, 하루종일 이
시간만 기다리며 설레여 했음에도 예약한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설레이던 마음이 어느새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어느덧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 재운이 카페문을 열고 들어오니 카페의 매니저가 재운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매니저: 어서오세요.”
“재운: 지나 예약했는데요.”
“매니저: 네. 알고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뭐랄까…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점잖고 지킬것을 지키는 손님을 향한 반가움이랄까. 지나에게도 그렇했지만 지나가 일하는 카페를 향해서도
재운은 늘 그렇게 행동했다. 매니저를 따라 룸으로 향하는 재운의 손에는 오늘도 뭔가 들려져 있다. 재운이 룸에서 지나를 기다린다.
붉은빛 얇은 조명. 기다란 소파와 테이블. 매번 동일한 룸이다. 지나의 집에 온듯 익숙하다. 똑똑똑. 잠시후 지나가 손에 작은
술병과 안주를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곧장 재운의 곁에 다가와 앉는다.
“지나: 잘 지냈어? 이번엔 한 달 넘어서 왔네?”
“재운: 일주일 지났는데…? 넌? 잘 지냈어?”
“지나: 음… 친구들하고 먹으러 다니구 그랬어.”
두 사람은 꿈에서 만큼은 어느 연인들과 다를바 없어보인다. 손을 꼭 잡고 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궁금해하고 안부를 묻는다.
“재운: 초코브래드 사왔는데…”
“지나: 어 정말?”
“재운: 지금 먹을래?”
“지나: 음…”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재운은 지나를 먹이려고 사온 빵 케이스를 열고있다. 카페 꿈을 2년여
오면서, 언제부턴가 두 사람은 지나가 가져온 술과 안주는 먹지도 손을 대지도 않았었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었기 때문이다. 어느날엔 밤을 세워 전화통화를 하듯 기다란 소파에 마주보고 누워선 1분도 쉬지않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지나: 손이 왜 이렇게 텃지? 찢어진건가?”
“재운: 튼거야…”
지나가 꼭 잡고있는 재운의 손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도 그럴것이 재운의 손이 너무 엉망이다. 손이 너무 터서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데도 핸즈크림도 바르지 않았나보다.
“지나: 잠깐만…”
지나가
바쁜 걸음으로 룸에서 잠시 나간다. 재운은 그저 지나를 보고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다시금 룸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문만 멍하니
쳐다본다. 잠시후 지나가 손에 바를 약과 반창고를 가지고 돌아와선 재운 앞에 양반다리로 털썩 앉더니 재운의 상처난 손 이곳저곳에
약을 바르기 시작한다.
“지나: 손이 왜 이렇게 텃지?”
재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손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지나를 물끄러미 보고있을 뿐이다.
“지나: 다 됐다…”
쪽. 쪽. 그러더니 지나가 재운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재운이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덩달아 지나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재운: 먹자!”
“지나: 아!”
잠시동안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며 서로를 보던 재운과 지나. 재운이 사가지고온 초코브래드를 지나에게 주려고하니 지나가 입을 크게 벌리며
빵을 먹기 시작한다. 한 달에 한 번 이처럼 지나를 만나기 위해 카페를 찾아오는 내내, 재운은 늘 꿈을 꾸었다. 지나를 만난
그날에도, 또 수야가 너와 운명을 함께할 사람이라고 재운에게 지나를 보여준 그날부터, 그리고 지나를 보여주기 훨씬 전부터, 수야를
위해 멋진 영화를 만들겠다 결심한 그날부터… 재운은 늘 꿈을 꾸었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한다 할 지라도 늘 수야의 얼굴을 구하며
수야와 함께 걷는 꿈을 말이다. 이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그땐 지나의 손을 꼭 잡고, 지나와 함께 걸으며, 수야의 얼굴을
함께 구하며 수야가 우리안에 우리가 수야안에, 그렇게 지나와 함께 수야와 동행하리라… 꿈을 꾸었다…
“재운: 할머님은? 많이 좋아지셨어?”
“지나: 음… 이제 다 낳으신거 같아… 지지난주에 재사 있어서 집에 갔다 왔거든. 새언니가 할머니 머리를 잘라 주면서 그 핑계로 나한테 뭘 계속 시키는거야. 그래서 한바탕 해주고 왔지.”
“재운: 새언니가 머리를 잘 짤라?”
“지나: 음. 미용실해…”
“재운: 왜 집까지 가서 한바탕 하고왔어. 좀 참지.”
“지나: 할머니 머리 잘라 드리는건 고마운데 괴씸하잖아. 내가 시누인데.”
“재운: 음. 맞아.”
지난
2년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하여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까지 나눌수 있는, 어느새 두 사람은 정말 친밀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성격도 성향도 많이 알게 되었다. 오늘은 단지 지나가 새언니 흉을 좀 보았을 뿐이다.
언젠가
한번은 지나가 퇴근하고 집엘 갔는데 친구들이 애견카페에서 싸움이 났다고 전화를 하는 통해 새벽에 그 새벽에 다시 애견카페에 가선
한바탕 싸우고 왔다는 이야기를 재운에게 했던적이 있었다. 지나는, 겉으론 지는걸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싸움닭인 강한 여자이지만, 하지만 가슴속으론 혼자서 끙끙거리며 모든 상처를 속알이를 하며 삵히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은 오늘도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느낄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나눈다. 설사 재운의
착각이었을 지라도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재운은 분명히 지나를 느낄수 있었다.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지났는지 벨이 울린다. 띵동.
띵동. 띵동.
“지나: 벌써 시간 다 됐나보네…”
“재운: 음…”
오늘도 역시나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서는 발걸음 역시 처량할 것이다.
“재운: 오송 어딘줄 알아?”
“지나: 아니? 어딘데?”
“재운: 여기서 한 30분쯤 가면 오승이라는 곳이 있는데 소나무가 엄청나.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도 길게 만들어져있고 정원같이 잘 꾸며져 있어서 도시락 싸가도 되고…”
“지나: 음… 소풍가면 딱이겠는데…”
지나도 오송이 궁금한 눈치다.
“재운: 같이 가볼래?”
“지나: 그럴까… 바람 쏘이고 올까? 언제?”
“재운: 넌 언제가 시간 괜찮은데?”
“지나: 음… 글쎄…”
재운이 지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잠시후,
“지나: 그럼 내가 시간 정해서 전화할께.”
“재운: 언제?”
“지나: 음… 한 수요일쯤…”
“재운: 알았어.”
“지나: 전화 기다려.”
“재운: 음.”
재운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카페를 나선다.
“지나: 잘 가…”
재운이
아쉬움을 달래며 카페를 나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재운의 안색은 그리 밝지 못하다.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아서다. 만약 지나에게 전화가 없으면?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이 카페를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도 없는 호구처럼 굴어도 되는걸까. 과연 그러고 싶을까. 설사 수야가 지나가 운명을 함께할 사람이라고 했을지라도
말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부푼 기대가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약속을 했으니 이번엔 전화가 올까. 약속을 지킬까. 하지만
아무래도 오송 이야기는 괜히 꺼냈단 생각이 재운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나의 속마음이 어쨌든 확신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이 카페에서 재운은 손님으로, 지나는 아가씨로 만난게 전부다… 한달에 한번 이 카페에 찾아와 지나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떨어져 있는 많고 많은 날들을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것도 모르는게 현실이다.
손님과 아가씨로 만나는 그 시간을 제외하면 지나도 재운처럼 보고싶어 하고 함께하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지 재운이
어찌 알겠는가.
약속을 했으니 기다려 보는수밖엔 이젠 방법이 없다. 설사 이 카페를 다시는 오지 못할지라도 어치피
운명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만나지지 않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아무래도 오송은 괜한 이야기였나보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지나를 만나러 이 카페를 올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났어도 지나에게선 이무런 연락도 없었다…
“재운: 그렇군… 그렇게 마음이 없는 거라면 뭐…”
재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의 전화를 기다리다 한 달, 두 달 시간을 보냈고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날 이후론 지나를 볼 수
없었다. 대리운전을 하며 우연치않게 어떤 남자의 차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지나를 꼭 한 번 보았을 뿐이다…
그
이후로 재운은, 그녀가 그리울때마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보이는 한적한 골목길을 향해 차를 몰고가 주차를 한 후 차안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시간을 보내며 보고싶은 마음을 달래곤 했다. 어느때는 일주일 내내, 어느때는 한달 내내… 어머니가 아파 쓰러지시기
전까지… 재운은 지나가 보고 싶을때면 늘 차를 몰고 지나가 사는 아파트가 보이는 골목길로 찾아갔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만 더
지나면… 그러면 편안해 지겠지… ‘어째서 수야님은 마음에도 없는 지나가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사람이라 하셨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재운은 알지 못했다… 이 여자 최지나… 이 여자를 만난 그 순간부터 수야의 위대한 장난질이 시작된 것이었음을, 이때까지만해도
재운은 알지 못했다. 아일랜드에 사람이 존재한 이후로, 창세에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수야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재운도
수야의 본질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때까지만해도 재운은 깨닫지 못했었다. 이 여자 최지나를 만난 그날, 그날이 예수야라는
자의 거룩한 저주가 시작되었던 날이었음을 말이다…
그로부터 1년후. 지나가 일하는 카페는 이미 영업이 끝났고 지나가 혼자 카페 아가씨들이 쉬는 대기실에 앉아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리고 잠시후 매니저가 들어온다.
“매니저: 지나 안갔니?”
“지나: 음 나 오늘 차 없어.”
“매니저: 아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차가 없거나 교통편이 없는 아가씨들은 새벽 3시에 영업이 끝나는 관계로 늘 매니저가 집까지 태워다준다. 카페 매니저가 분주하게 정산을 하다가 순간 그의 눈동자가 고개를 푹 숙인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지나에게로 향한다.
“매니저: 요즈음 그 분 않오시네?”
“지나: 누구?”
“매니저: 너 찾아오는 단골손님 있었잖아. 1시에…”
“지나: 아… 그러게… 왜 안오지?”
지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스마트폰에서 눈을 때지 않고는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어쩐지 지나의 음색이 어둡다. 매니저는 이런 지나를 걱정어린 눈빛으로 돌아본다.
“지나: 멀었어?”
“매니저: 다 됐어. 지나 내일 출근 안하지?”
“지나: 음…”
“매니저: 어디가서 오빠랑 시원한 맥주한잔 하고갈래?”
“지나: 어디서?”
“매니저: 글세… 갈 때 없겠냐?”
“지나: 그럴까?”
맥주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매니저에게 시선을 돌린 지나다. 아무래도 지나도 오늘은 술 생각이 간절했나보다. 그리고, 처음 찾아간
술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나온 두 사람은 매니저의 이런저런 이유와 편하게 마시자는 설득에 결국 매니저의 집으로 가게된다.
“매니저: 그럼 너도 싫지는 않은거네?”
“지나: 음. 싫지는 않았는데… 일하면서 만났으니까 내가 좀 많이 튕겼지.”
“매니저: 그게 뭔 상관이야. 그런건 상관없지 요즈음 세상에…”
“지나: 음… 전화 한 번 해볼까?”
“매니저: 니가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냐. 할 필요 없어. 지가 생각이 있으면 다시 오겠지.”
“지나: 음… 그렇겠지? 근데 시간 너무 지나면 어색하지 않을까?”
“매니저: 지나가 남자 다를줄 잘 모르네… 남자는 그렇게 다루는게 아니야. 10년이 지나도 만날 사람이면 어차피 다 만나. 남자는 숨을 못쉬게 해야 되거든. 그래야 평생 너한테 굽신거리면서 살거 아니야.”
“지나: 음…”
“매니저: 요즈음 세상에 사랑 때문에 결혼 할거냐. 불륜 공화국인거 모르냐. 애인따로 섹파(섹스를 위한 파트너)따로 남편 따론건데, 길을 잘 들여야 니가 편하지.”
“지나: 음…”
“매니저: 너는 절대 움직일필요 없어. 지가 알아서 다시 찾아오게 돼 있어.”
“지나: 음…”
지나는 매니저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는 지나를 계속 띄워주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느새 많이 취했다.
“매니저: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몸도 마음도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그 사람 앞에서도 더 당당할 수 있는거고. 그게 일종의 습관이거든. 너 이런 나 싫어? 그럼 잘가가 되야지.”
취한
지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지나를 꼬시기 시작한 매니저… 매니저는 때로는 지나를 달래주고, 때로는 간지러운 이야기를 속삭이며
지나가 자신과도 당당하게 즐길수 있어야 재운이 지나를 더욱 오려워 한다고 설득했고 결국 이날 밤, 지나는 매니저의 집에서 매니저와
몸을 섞은후 그곳에서 잠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매니저: 가자.”
“지나: 오빠 나랑 잠깐 어디 좀 들렸다 갈 수 있어?”
“매니지: 어디 갈때 있어? 그래. 근데 나도 빨리 씻고 준비해야돼. 시간 별로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은… 재운을 구경하러 간다… 재운이 수야와 교재하려고 산엘 오르는 그 시간. 지나는 매니저의 차를 타곤 재운이 사는 동네를 빙빙돌며 재운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지나: 저기 있다!”
“매니저: 아… 저 사람이구나…”
매니저도 이런 지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지나의 속마음은 지나 자시만 알겠지만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전날밤 몸을 섞은 남자와 보러 온 것이다.
“매니저: 넌 저사람이 여기 사는지 어떻게 알았어?”
“지나: 어떻게 우연히 알게됐어. 산에 한 두 시간 있다가 우리집엘 와.”
“매니저: 왜?”
“지나: 그냥 자기 차 세워놓고 하루종일 있더라고.”
“매니저: 왜? 너 보려고?”
“지나: 몰라.”
지나는
자신이 하고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불륜 공화국일 지라도, 아무리 세상이 이 매니저 말대로
남편따로, 애인따로, 섹파(섹스를 위한 파트너)따로인 그런 세상일 지라도, 아무리 그럴싸한 핑계와 변명을 한다해도 몸이 있는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진실조차 알지 못하는 여자였다.
“재운: 그런게 어딨냐? 그런건 다 거짓말이야. 친구 남자친구가 잘못한거지.”
“지나: 음… 오빠라면 어떻게 말할거야?”
“재운: 무슨 핑계를 대도, 어쨌든 여자 후배를 도와줘야 한다고 갔으면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그 여자후배가 지 여저친구보다 중요해서 간거야. 몸 따로 마음따로라는 말은 변명이고 핑계지.”
“지나: 음. 맞아!”
“재운:
넌 절때 그렇지 마. 원래 부부는 둘이 아니야. 창조자가 흙으로 남자를 창조한것처럼 여자도 흙으로 창조할 수 없어서 남자의
갈빗뼈로 창조한게 아니래. 남과 여과 한 몸이기에 그렇게 하셨대.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음은 당신의 큰 비밀이래.”
“지나: 아… 그렇구나… 계속 말해봐.”
“재운: 그러니까 그 친구한테 남자친구한테 이렇게 물어보라고 해봐. 세상없어도 내가 싫다고하면 일단 나가지 말라고. 세상없어도 일단 내가 싫다고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지나: 음…”
지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운의 말을 경청한다.
“재운: 설사 오해가 있어서 네가 내 친구를 싫어해도, 그 오해는 우리 둘이서 천천히 풀면 돼. 설사 오해가 있어서 누군가와 인연을 끊어야 할 지라도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사람이 최 우선인거야. 내 반쪽이 최 우선이야.”
“지나: 음. 맞아.”
“재운: 그러니까 그럴수 없다고하면 친구한테 그 사람과의 결혼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해…”
“지나: 음. 그럴께.”
지나가
재운의 몫덜미를 꼭 끓어않으며 대답했다. 지나가 매니저와 몸을 섞은 그날로 2년전 어느날 재운이 지나에게 했던 말이다. 재운은
이런 사상을 간직한, 적어도 지나가 매니저와 산에 오르는 재운을 구경하러 갔던 그 순간까지는 수야의 경이 가르치는 정신이 골수
끝까지 채워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나는 몸따로 마음 따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히는가 보다. 그토록 재운을 힘들게 한 여자가 하룻밤
술에 취해 다른 남자에겐 그토록 쉽게 자기 몸을 허락하고 그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남자와 함께 어떻게 하면 재운을 더욱
힘들게 할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재운의 어머니가 쓰러지신 후에도,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저곳으로
집을 옮겨 다닐 때에도, 재운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던 그 순간에도, 때로는 이런저런 남자들의 차를 얻어타고, 때론 친구들의 차를
얻어타고 히히덕거리고 깔깔거리며 재운을 구경 다녔다. 재운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느 시점 어느 순간부터 그저 말을
섞거나 아는척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재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나의 그 구역질나고 엮겨운 행위를… 수야가
재운에게 지나가 너를 보러 온단다 말했을때의 그 구역질남을 참기 어려워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토를 했던 그날을… 재운은 절대로 잊지
못하라라. 지나는 지금 자신이 이런 재운을 얼마나 더 비참하게 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이곳은 카페 꿈의 아가씨들이 쉬는 대기실이다.
“매니저: 너희들 저녁 뭐 먹을래?”
“수경: 글쎄. 우리 오늘은 떡볶이 같은거 먹을까? 튀김하고…”
“혜진: 그래. 그렇자. 분식먹자.”
“매니저: 알았어. 금방 갔다올께.”
매니저가 아가씨들 저녁식사를 사러 나가려는 순간, 윤경이 들어온다.
“윤경: 안녕…”
그리고 인사를 나눈뒤 매니저는 나가고 수경, 혜진, 윤경이 대기실에 남았다.
“윤경: 오늘은 우리 셋 뿐인가?”
“혜진: 지나언니랑, 미야랑 오늘 하루 쉰다고 했대.”
“윤경: 숙희언니 오늘 생일이라 나이트에서 뭉치기로 했대.”
순간 수경이 웃는다. 그리곤 혜진에게 말한다.
“수경: 이야기 못들었지? 어제 지나, 매니저 오빠랑 잣덴다.”
“혜진: 진짜?”
“수경: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그 오빠 보러 같이 갔데.”
“혜진: 누구?”
“수경: 지나 찾아오던 오빠 있었잖아.”
“혜진: 그 오빠를 왜 찾아가?”
“윤경: 그야 우린 모르지…”
“혜진: 아닌데. 지나언니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윤경: 뭐가 아니냐. 지난번에 클럽 갔을때 보니까 남자 손붙잡고 제일 먼저 나간게 지나언닌데.”
“수경: 지나 같은 애들이 진짜 팔짜 사나운거야. 나중에 결혼해도 인바껴 저런 애들은…”
“혜진: 그래도 그렇지 왜 매니저 오빠랑 자? 왜?”
“수경: 내 말이 그 말이야. 쪽팔리게 가게 매니저랑 자냐.”
“윤경: 그 오빠도 참 불쌍하다. 착한거 같던데.”
“수경:
뭐가 불쌍하냐. 첨만 다행이지. 진짜 결혼이라도 했어봐라. 지 서방한텐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다 내새우면서 밖에 나가선 엄한
것들이 간지러운말 살살살 하면 쿨하게 줄거 안줄거 다주고 서방 병신만들어 집안은 콩가루 집안 만들어… 천운이다 야.”
앞에 앉아있는 윤경과 혜진이 깔깔거리며 수경을 말린다.
“혜진: 언니….”
“수경:
너 매니저 오빠가 하는말 못들었지. 앤 같이 들었어. 이럴거래. 자기는 그럴리가 없다고 보지만, 만약에라도 그 호구새끼랑 지나가
사귄다? 그럼 이럴거래. 지나가 당신 여자야? 근데 당신 여자는 당신한테 전화번호도 안 알려주지. 나한텐, 내가 다리 벌려 하면
벌린다. 이럴거래.”
“혜진: 뭐야…?”
혜진이 다소 정색을 하며 윤경을 돌아본다.
“윤경: 정신 차리게 해줄거래.”
“혜진: 와…. 저 오빠도 진짜 소름끼친다….”
“수경: 진짜 소름돋지 안냐.”
카페 꿈. 아가씨들의 휴식공간인 대기실안에서… 지나를 흉보던 그 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재운을 향한 조롱과 비웃음으로 바뀌어간다…
“윤경: 그 오빠 한 1년은 더 오지 않았었나?”
“수경/혜진: 1년이 뭐야?”
“혜진: 2년도 넘었겠다.”
“수경: 와 근데 진짜 그 사람은 하룻밤새 병신되네. 여자 잘못 만나서.”
[ 등장인물 ]
수야. 아일랜드의 창조자.
궁사. 수야의 몸종들.
사천. 수야의 심부름꾼.
재운.
지나.
홍사장.
박영보.
[ 목차 ]
제1장. 꿈. Coming soon.
제2장. 대리기사 홍사장.
제3장. 믿음.
제4장. 수야의 실체.
제5장. 수야의 개 박영보.
제6장. 어떤 창녀 이야기.
제7장. 저주받은 가족사.
제8장. 위대한 음모.
제9장. 지나의 죽음.
제10장. 심문.
제11장. 들어나는 실체.
제12장. 사라진 꿈.
[제1장 꿈]
제1화. 살자(自殺).
제2화. 대리운전.
제3화 재단(齋壇).
제4화. 카페 꿈.
제5화. 시련(試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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